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넬리크 2세 (문단 편집) === 초기 === 에티오피아의 황가인 솔로몬 왕조의 셰와 분가 출신으로, 그는 [[자라 야콥]] 황제의 증손자 다위트 2세의 삼남 야콥 대공의 차남(...) 세그와 칼 대공의 후손이다. 그의 가문은 메넬리크 2세의 8대조인 네가시 크레스토스 대부터 쇼와 지역의 사실상 독립적인 왕으로써 다스려왔다. 1844년 8월 17일 에티오피아 암하라 지역의 앙골랄라 테라에서 쇼아의 왕족 네구스 하일레 멜레코트와 왕녀 워이제로 에지가예후의 아들로 태어났다. 워이제로 에지가예후는 하일레 멜레코트의 조모이자 당시 쇼아의 왕 사일레 셀라시에의 모친인 우이세로 제네보크의 하녀였다. 대부분의 기록에 따르면, 하일레 멜레코트와 워이제로 에지가예후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쇼아의 왕이자 메넬리크의 할아버지인 사일레 셀라시에는 메넬리크를 왕실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왕위 계승권이 있음을 공표했다. 그후 왕위에 오른 하일레 멜레코트는 아들을 후계자로 삼았다. 1855년 네구스 하일레 멜레코트가 사망했다. 그는 죽기 전에 11살이 된 아들 메넬리크를 왕위 계승자로 지명했다. 그러나 쇼아는 하일레 멜레코트가 사망한 직후 에티오피아의 황제 [[테워드로스 2세]]에게 정복되었고, 메넬리크는 포로로 잡혀 마그달라의 산거지로 이송되었다. 하지만 테워드로스는 어린 왕자를 잘 대해줬고 심지어 1864년에 자신의 딸 알타쉬 테워드로스를 그와 결혼시키기도 했다. 한편, 메넬리크의 삼촌 하일레 미카엘은 테워드로스 2세 황제에 의해 메리다즈마치라는 칭호를 부여받으며 쇼아를 다스렸다. 그러나 하일레 미카일은 에티오피아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결국 축출되었고 왕족이 아닌 아토 베자베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아토 베자베는 황제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자신을 쇼아의 왕으로 칭했다. 당시 쇼아의 왕족들은 왕족 중 한 사람이 쇼아를 통치한다면 마그달라에서 억류된 채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에 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왕족이 아닌 자가 쇼아의 왕을 칭하는 것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에 그들은 메넬리크를 마그달라에서 탈출시키기로 하고 탈출 계획을 세웠다. 총신 모하메드 알리와 울로의 여성 섭정 월키투의 도움으로, 메넬리크는 1865년 7월 1일 밤에 마그달라를 탈출하여 부인 알타쉬를 버리고 쇼아로 돌아갔다. 이에 격노한 테워드로스 2세는 29명의 인질을 학살하고 12명의 쇼아 귀족들을 몽둥이로 난타해 죽게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